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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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다가가기
간주되어 자의적으로 연행·구속되었다. 당시의 권위주의 정부는 민주적 정당성과 정통성
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인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조차도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인권운동은 민주주의의 회복, 즉 민주화운동
과 함께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가장 조직적인 인권침해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발생하였다. 수많은
학생, 노동자, 지식인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구속·수감되면서 양심수가 대규모로 발생하였
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에서 인권침해의 대명사가 되었고 국제인권단체는 물론
이고 유엔으로부터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인권은 이른바 ‘국가안보’와 ‘경제성장 우선주의’의 논리�� 의해 왜
곡되고 수용되어왔다. ‘국가안보 없이 인권 없다’ 또는 ‘선 경제성장 후 인권보장’의 논리는
온갖 반인권 정책을 합리화하는 구실을 제공하였다. 권위주의 정부는, 인권의 철저한 보장이
진정한 국가안보의 전제조건이며 지속 가능하고 질적인 경제성장은 인권의 보장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인권 중심의 접근 대신, 인권을 국가안보 - 실제적으로는 정권안보였지만 - 또는
경제성장의 장애 또는 걸림돌로 인식하였고 인권을 정치적 수사나 구호로 이용하였다.
한편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이루어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부가 증대하면서 경제·
사회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조성되었다. 전반적으로 국민 전체의 평균소득
은 늘어났지만, 농촌과 도시 주변에 새로운 형태의 가난이 양산되었고 빈부 격차가 심화하
면서 오히려 일부 계층과 집단의 생존권, 즉 경제·사회적 권리가 침해되는 현상이 나타났
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노동, 농민 및 도시빈민 중심의 인권운동이 활성화되었다.
인권의 실현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1993년 평화적이고 민주
적인 선거를 통해 군부의 권위주의 정부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간정부 시대가 열리게 되었
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1997년 김대중 ‘국민정부’ 그리고 2003년 노무현 ‘참여정
부’를 거치면서 한국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진일보하였다. 특히 민주정권
에 의한 과거청산 노력도 나름대로 결실을 맺어 인권 피해자의 배상과 명예회복이 부분적
으로 이루어졌다.
1991년 한국은 북한과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가입 직전인
1990년 사회권 규약과 자유권 규약에 동시에 가입하였다. 이를 계기로 유엔이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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