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러닝슈즈를 싣고 운동경기장을 찾아다니며 판매활동을 했다. 상품 이름은 블 루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 BRS)라 하였다. 얼마 후 신발을 직접 생산 하기 시작하면서 회사를 차리고 회사 이름을 나이키로 하였다. 첫해의 매상은 8달러였으며 신발로 벌어들인 이윤은 250달러에 불과하였다. 그는 대학시절 코치였던 보워먼에게 도움을 청했고, 보워먼은 아내가 사용하는 와플 굽는 틀 속에 약간의 고무를 집어넣고 고무 와플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그 것을 잘라 신발 밑창에 아교로 접착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코치하는 팀의 선수들 에게 그 신발을 나누어 주고는 그것을 신고 뛰어 보라고 하였다. 선수들의 반응은 좋았다. 수축이 잘될 뿐 아니라 탄력도 훌륭했던 것이다. 이 신발로 나이키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1970년대의 가장 혁신적인 신발 제조업 체로 명성을 높이다 1979년에 이르러 선두업체로서 가장 인기있는 회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1996년, 라이프지에 나이키의 축구공을 꿰매는 12살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이 실린 이후 나이키를 비롯한 스포츠 브랜드들은 비난에 처하게 되었다. 나 이키는 대응전략을 수립하고 비난에 대응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나이키의 세대별 대응 전략 • 1990년대 아동 노동 착취 문제 이후에 인권, 노동 기준을 준수하고 강화하는 전 략을 사용하였다. • 1996년에 국제 자유무역노조 연합 (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ICFTU)은 파키스탄의 시알콧의 축구공 생산업에서 시알콧 축구공 프로 그램(Sialkot Soccer Ball Program)을 통해 아동 노동 철폐 운동을 시작했다. 시알 콧에서 축구공을 꿰매는 일에 종사하는 아동들은 7천명이며 지역 축구공 생산 인 력의 17%나 차지했다. • 1997년 초부터 아디다스, 나이키, 리복을 포함한 50개의 스포츠용품 브랜드들은 1세대 지역 생산 업체들과 (2002년 중반까지 100개) 시알콧 상공회의소(Sialkot Cham(Generation I) ber of Commerce and Industry: SCCI), 각종 국제기관들과 함께 파키스탄 축구 CSR 전략 공 생산업에서 아동 노동 철폐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각 브랜드 기업은 ILO의 아동 노동 철폐를 위한 국제 프로그램(International Program for the Elimination of Child Labor: IPEC)이 파견한 독립 모니터링 기관이 아동 노동과 상관없다고 인 증한 생산업체에서만 축구공을 구매하기로 합의했다. • 2002년 4월, 아동 노동 철폐를 위한 국제 프로그램(International Program for the Elimination of Child Labor: IPEC)은 시알콧 축구공 생산력의 95%에 달하는 2,600 개의 공장을 모니터링 했는데, 9개월 동안 적발률이 0%였다. 해당 기업들은 아동 노동에 종사했던 아동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 프로그 램으로 학교 밖 교육센터를 만들고 소규모 창업 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94 •인권경영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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